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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경북장애인종합예술제 수필부문 동상 수상작

작성자 :  ()

조회 : 183 / 등록일 : 17-09-07 00:00


 
 희망을 그리는 구족(鉤足)화가
 김경식
 
 
 삶의 어둠, 기쁨과 환희. 이 순간들을 화려한 빛과 색채로 표현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로 평가 받는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와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1998년 서울국립재활원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여러 환자와 오다가다 마주치는데 나와 같은 부위를 다친 환자를 만나면 더욱 반갑다. 한 눈에 봐도 그는 심한 장애를 입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나처럼 목등뼈를 다친 것 같았다. 목등뼈를 다치면 대게 목 아래부터 몸 전체가 마비된다. 그의 휠체어를 아내가 뒤에서 밀며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다녔다. 그는 나의 맞은편 병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나보다 열 살이 더 많았다. 동병상련이라고 서로 먹을 것도 나눠 먹으며 친형제처럼 허물없이 가깝게 지냈다.
 하루는 그가 나에게 꼭 보여줄 것이 있다며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나는 어디를 가려고 한밤중에 불렀을까 무척 궁금했다. 모퉁이를 돌아 도착한 곳은 병원 복도 구석의 작은 방이었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곳이라 거기에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장 먼저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가 눈빛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그림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불렀어.”
 나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당시 나는 그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르누아르의 <오리 연못>처럼 자연풍경이 무척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문득 ‘손을 움직일 수 없는데 대체 저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입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내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넉 달이란 시간이 걸렸어. 깊은 밤이나 새벽에 갑자기 그림을 그려보고 싶을 때가 있어. 하지만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깨우지 않고,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지!”
 다른 환자들은 온종일 재활치료를 받느라 몸이 녹초가 되어 저녁을 먹으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그는 밤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입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다음날도 나는 그곳에 갔다. 그는 입에 붓을 물고 온화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나가려는데, 붓을 내려놓으며 자신이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P형은 고등학교 때 유망한 축구선수였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하루는 축구연습을 하고 친구와 함께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척추를 다쳐서 전신마비가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P형은 실의에 빠져 비관하며 자살까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창문에 비친 밤하늘에 홀로 반짝이는 별을 보고는 ‘나도 저 별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이 샘솟았다. 그날 이후로 P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문득 둘째 누이가 그림을 그렸던 게 생각났다. 그러나 손을 움직일 수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누이의 조언대로 입에 연필을 물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의 그림은 그림이라기 보단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것처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 부모님은 아들의 노력하는 모습이 무척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는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운명처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갈고리처럼 굳어서 사용할 수 없는 손대신 입으로 연필과 붓을 물다 보니 자주 입술과 입안이 헐어서 피가 났다. 어느 때는 이로 붓을 너무 꽉 물다 턱에 감각이 없어 밥도 못 먹을 정도였다. 때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림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마침내 한편의 그림을 완성하여 전국장애인미술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대상을 받아 구족화가가 되었다.
 그 무렵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일흔이 넘은 부모님 대신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천사 같은 여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날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10년 만에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그녀는 장애인단체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했다. 그녀는 P형보다 여덟 살 연상이었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그의 집에 왔다가 우연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순간 자신이 평생 이 사람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 집에서 이 사실을 알고는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당장 헤어지라고 했지만,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했다. 부모님께 축복받으며 결혼식은 올리지 못하고, 지하 단칸방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P형과 나는 각자 퇴원하여 집으로 갔다. 하루는 TV를 보는데 P형이 나왔다. 그사이 P형은 대구조형예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머물며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두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서 결혼식 장면과 P형이 결혼반지를 입에 물고 아내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 순간 아내의 눈에선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물이 흘렀다.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하객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결혼식보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르누아르는 말년에 심한 관절염으로 휠체어에 의지하여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절망과 분노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젊음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P형도 르누아르처럼 희망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가끔 P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기쁨과 희망을 주고 싶은 게 소망이야.”
 P형은 오늘도 옆에서 도와주는 천사 같은 아내와 함께 입에 붓을 물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구족화가로 성공하고, 장차 그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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